(이 글은 2011년 7월 본인이 위키백과에 기여했던 글을 수정및 확대한 것입니다. khlnmusa)
1. 개요
뉴멕시코(New Mexico) 주는 미국 남서부에 위치한 주이다. 산악표준시(MST, Mountain Standard Time )를 쓰는 시간대에 속한다. 면적으로 보면 한국 남북한의 약1.5배가되고 미국에서 다섯번쩨로 큰주 인데 인구는 200만명정도 밖에 안되어 인구밀도가 낮기로 미국의 50개주중 여섯번째 이다.
뉴멕시코란 이름을 스페인어로는 Nuevo Mexico라고하는데 이 이름은 16세기말 부터 불려진 이름이다. 스페인의 식민지인 New Spain(Nueva Espana)에 포함된 지역으로 되면서 1610년 산타페(Santa Fe)를 수도로 정하게 되었다. 약200여년간 스페인의 통치밑에 있던 뉴멕시코는 1821년 멕시코의 독립으로 잠시 멕시코 땅이되었으나 멕시코전쟁의 결과로 1848년 미국땅이 되었다. 1912년미 합중국의 47번쩨 주로 승격되었다.
뉴멕시코 주기(州旗:State Flag)를 보면 노랑바탕에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지아(Zia)가 표시되어 있는데 노랑색과 붉은 색은 스페인 국기에서 가져온 색갈로 뉴멕시코의 뿌리가 스페인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푸에블로 인디안의 지아 (Zia)태양무뉘를 통해서 뉴멕시코가 원주민 인디안 문화에도 기초를 두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뉴멕시코 주기(State Flag)
빨강색 Zia 의 원은 태양을 뜻하며 4개의방사선 모양의 선은 각각네가지의 의미가 있다. (상)동,서,남,북에서 불어오는 바람(하) 봄,여름,가을, 겨울 (우측)아침,낮,저녁, 밤 (좌측)유년,소년,장년, 노년. 이 모든것은 시작과 끝이 없이 돌아감을 뜻함
미국내에서 주 인구의 히스페닉계 주민 비율이44%로서 가장 높은 주이다. 원주민 인디안의 주민 비율도 높아 타주에 비교하면 전국에서 세번쩨가 되는 주다. 인종별로 분류해보면 백인이 70.1%, 인디안이 9.3%, 흑인이 2.2%, 아시아인이 1.4%며 기타가 14%이다.
주도(州都)는 인구 7만명이 되는 산타페(Santa Fe)이며 미국에서 가장 역사 깊은 오래된 도시(Oldest capital city)로도꼽힌다. Santa Fe란 이름은 스페인어로서 영어로 번역하면 Holy Faith, 즉 성스런 믿음이란 뜻을 가졌다. 오랜 전통을따라 발달된 민속 공예, 미술의 도시로 인정되어UNESCO에서 창조적인 도시(Creative City) 로 지정한 도시다. 산타페에 있는 미술 화랑이 300개에 달하여 산타페는 미국의 3대 미술 시장의 하나가 되는 특색있는 도시다.
주에서 가장 큰도시는 인구 55만명을 가진 알버커키(Albuquerque)이다. 위성도시를 합하면 인구는 87만이된다(2010년 통계). 발음과 스펠링이 어려운 까닭은 이 지명의 유래가 역시 스페인의 역사에 관련된다. 스페인의 폴투갈국경지대에 있는 마을로 Alburquerque가 있었는데 이마을 출신인 공작(公爵:Duke)이 1600년경 뉴스페인의 총독으로 부임해 있었는데 이곳 도시 설립허가를 스페인 왕에게 올릴때 그 총독의 출신마을의 이름을 이곳 도시이름으로 정했던것이 유래가 된다. 후에 시청에서 문서작성하든 사람이 Albu다음에 오는 r자를 하나 빼먹어버리는 실수를 했던 이유로 지금의 스펠링이 정식 이름으로 정착되어버렸고 미국땅이 되면서 발음도 스페인어 발음을 버리고 영어식으로변질되어 알버커키라는 발음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알버커키는 2007년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 6번쩨로 급성장하는 도시로 꼽힌다. 뉴멕시코대학(University of New Mexico)과 샌디아국립연구소(Sandia National Lab.)가 있다. 알버커키 위성도시로도 간주되는 리오란쵸(Rio Rancho)는 인구 8만8천 여명으로 뉴멕시코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도시다. 컴퓨터 칩을 생산하는 인텔(Intel)회사가 있다. 두번쩨로 큰 도시는 보다 남쪽에 있는 라스 쿠루시스(Las Cruces)인데 인구는 9만8천명이다. 이곳에 뉴멕시코주립대학(New Mexico State University)이 있다. 산타페의 서쪽 헤이메즈산속에 있는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는 인구 만여명 밖에 않되는 작은 도시지만 이차대전 말에 세계를 놀라게한원자탄을 개발한 연구소가 있는곳이다. 첨단 과학의 두뇌가 모인 연구소에는 한인 연구원들도 다수가 근무하고 있다.
주 전체가 고원지대로 되어 있어 위도로는 남쪽에 속해도 더위가 심하지않고 건조하여 살기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일년중 300일 이상 구름끼지않은 날씨이다. 따라서 강우량은 년 13.9인치(350mm)로 극히 낮다. 반 이상의 강우량은여름 7, 8월에 내린다. 산이 많은 북부 지대는 비와 눈이 보다 많이 내려서 숲으로 덮힌 국유림이 많다. 7월 여름 의낮 평균 최고 기온은 저지대의 경우97 °F (36 °C), 고지대의 경우70 °F (26 °C)내외가 된다.
2. 지리
뉴멕시코 땅이 별명으로 “매혹의 땅(Land of enchantment)”으로 불리는 까닭은 먼저 다양한 지형으로 되어 있기때문일 것이다. 황량한 사막과 숲이 울창한 높은 산들이 대조적이며 단층으로 인해 다양한 색갈이 들어난 지층과 메사(Mesa)들은 이곳을 찾는 여행객을 매혹 시킨다. 뉴멕시코 북쪽은 로키(Rocky)산맥의 끝 부분이 되는곳으로 산악지대이다. 가장 높은 산은 타오스 북쪽에 있는 상그레데크리스토(Sangre de Cristo)산에 속하는 휠러피크(Wheeler Peak)로 13,161ft(4,011m) 높이가 되며 알버커키동편에 있는 샌디아산(Sandia Mountains)은 10,678 feet (3,255 m) 높이가 된다. 2750m의 백두산 보다 500m정도 더 높다. 알버커키 도시는 해발 5,312ft(1,619m)가 된다. 로스 알라모스가 있는곳의 헤이메즈(Jemez)산은 화산으로 인해 생긴 산인데 그 분화구 함몰로된 칼데라(Caldera)는 반경이 14마일이 되어 세계에서 제일 큰 분화구가 된다. 뉴멕시코 남쪽은 평지가 많고 건조한 사막이많다. 흰모래언덕의 장관을 이룬 화이트샌드(White Sand)내셔널모뉴먼트(National Monument)와 풋볼 경기장만한지하동굴에 오묘한 종유석의 예술품이 있는 칼스베드 동굴(Carlsbad Cavern) 국립공원이 이지역에 있다.
콜로라도주 로키산맥에서 시작해 내려오는리오 그란데(Rio Grande)강은 뉴멕시코주의 중앙의 사막지대를 흘러텍사스와 멕시코의 경계로 내려간다. 이 강은 북미에서 4번쩨 가는 긴 강이다. 뉴멕시코에는 19개의 인디안 푸에블로(Pueblo는 스페인어로 부락이란 뜻)가 있는데 많은 푸에블로가 리오그란데강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리오그란데강의 상류쪽에 있는 타오스 (Taos)푸에블로는 관광객에게 잘 알려진 푸에블로다. 리오그란데 강물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가 여러개가되는데 그중에 하나인 코치티 호수(Cochiti Lake)가 알버커키 북쪽에 30마일 떨어진곳에 있다. 댐의 기리가 5.5마일이나 되어 세계적으로 11번쩨 되는 긴 댐이된다.
주정부 행정부의 수반은 주지사(Governor)가 된다. 2003년부터 8년간은 민주당 출신의 빌 리차드슨(Bill Richrdson)이 주지사였다. 그는 유엔대사를 지냈었고 북한을 일곱번 방문한 외교적인특별한 경력이 있다. 2011년 1월에 공화당출신의 수잔나 마티네즈(Susana Martinez)가 뉴멕시코 최초의 여성 주지사로부임했다. (사진 참조)
뉴멕시코주를 대표하는 상원 위원은 젶 빙거만(Jeff Bingaman)과 톰 유달(Tom Udal)로서 두분 모두 민주당 출신이다. 하원위원은 세석이 된다. 마틴 하인리히(Martin Heinrich), 헤리티그 (Harry Teague), 레이루한 (Ray Lujan), 세분 모두 민주당 출신이다.
4. 교육
가장 큰 교육기관은 주립대학인 뉴멕시코대학(University of New Mexico)이다. 알버커키에 1889년 설립되었다. 현재학생수는 3만4천명, 교수와 직원을 합친수는 6899명이된다. 학교의 별명은 로보(Lobo)인데 이는 회색 이리를 말한다. 소코로(Socorro)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뉴멕시코 택 (New Mexico Tech.)의 공식적인 이름은 New Mexico Institute of Mining and Technology인데 학생수는 1800명, 교수는 150명으로 교수와 학생 비율이 낮은것을 자랑하는 공과대학이다. 2010년 Prinston Review에서 이학교를 우수한 단과대학으로 선정하면서 전국 랭킹 12번쩨 로 보고했다. 두번쩨로 큰 종합대학은 라스 크루시스(Las Crucis)에 있는 뉴멕시코주립대학(New Mexico State University)이다. 현 학생수는 약1만 8천여명이다. 1888년 농과대학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학교의 별명은 애기(Aggies: 농대의 애칭)가 되었다. 알버커키 지역의 초, 중, 고등학교는 APS(Albuquerque Public School)에서 운영한다. 6500명의 교사가 8만9천명의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89개의 초등학교, 27개의 중학교, 13개의 고등학교가 속해 있다.
University of New Mexico
5. 산업경제
뉴멕시코 경제의 가장 큰 영향을 주는것은 역시 연방정부이다. 세개의 공군기지와 두개의 국립연구소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관광도 이지역 경제에 큰영향을 준다. 10월 첫주에 9일간 열리는 알버커키 벌룬 피에스타(Balloon Fiesta) 는 대표적인 행사인데 800개의 열기구벌룬(Hot air balloon)이 뜨는 장관을 보려고 약 75만명의 관광객이 모인다. 산타페를 찾는 관광객도 2010년 통계로 120만명을 넘었다.
농업은 리오그란데 강 주변에 몰려있다. 강을 따라 농사를 짓는 밭이 이어지는데 칠리(Chies)라는 고추가 이지방의주요 농작물이다. 멕시코음식에 필수가 된다. 식당에서 묻는 질문으로 ‘Red or Green ?’ 을 자주 듣는다. 녹색칠리와빨간칠리중 어느것을 원하느냐 라는 질문인데 이것 역시 뉴멕시코 특유의 질문이다.
지하자원이 풍부한것도 이 고장의 자랑거리의 하나다. 천연가스, 석유, 비료의 원료가 되는 포타슘의 매장이 많다. 구리의 매장량은 미국 여러주 중에서 가장 많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버시티 (Silver City)근방에 있는 산타리타(Santa Rita)의 노천 동 광산은 그 크기가 엄청나다.
전자산업의 대표적인것으로 컴퓨터 칩을 생산하는 인텔(Intel)회사를 들 수 있다. 리오란쵸 신흥도시를 발전하게 만든 이 회사는 1981년 세워져서 컴퓨터의 펜티움 칩을 생산했는데 최근에는 300mm wafer 기술을 도입하여 반도체 칩을 생산하고 있다. 뉴멕시코 주안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회사이다.
Intel in Rio Rancho
6. 뉴멕시코의 인물들
뉴멕시코가 자랑할만한 인물을 몇몇사람 소개해보자. 인구가 적은 뉴멕시코에서 무슨 큰 인물이 났겠는가....라고생각하기 쉽지만 그 생각은 틀린것 임을 알수 있다.
o 존 덴버(John Denver: 1943-1997)는 1968년부터 활약한 미국의유명한 가수면서 작곡가였다. 그는비행접시가 출현한것으로 알려진 라스웰(Roswell)에서 태어난 사람으로1997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 하기전까지 300여곡을 음반으로 내어놓았고 그 중 200여곡은 본인이 직접 작곡한 곡이였다. 한국사람에게도 잘 알려진곡으로 “Take Me Home, Country Roads”, “Annie’s Song”등이 있다.
o 알씨 골만(R.C. Gorman: 1931-2005)은 나바호 인디안으로 세계적인 화가로 명성을 얻게된 사람이다. 뉴욕타임즈지는 그를 “인디안의 피카소”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의 메트로포리탄 미술박물관에도 전시되었다. 타오스에 화랑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디안 여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활동을 했다.
o 콘라드 힐튼(Conrad Hilton:1887-1979)은 뉴멕시코의 산안토니오 출신이다. 소코로에서 아버지가경영하는 상점일을 어렸을때 부터 도왔는데 나중 택사스주에 있는 조그만한 호텔을 하나 구입 운영하기시작하여 차츰 발전하여 세계적인 체인 호텔인 힐튼 호텔(Hilton Hotel)을 세웠다. 그는 소코로에 있는뉴멕시코광산대학(지금의 New Mexico Tech.)을 졸업했었다.
o 죠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뉴멕시코 출신은 아니지만 그의 인생의 대부분을이곳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보낸 여류 화가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든 그는 1929년 타오스를 방문한것을 계기로 뉴멕시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아비큐(Abiquiu)에 살면서 뉴멕시코의 자연을 그림에 수 없이많이 옮겨놓았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의 미술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그의 작품만 모은 미술 박물관이산타페에 있다.
o 바비 언서(Bobby Unser:1934- )와 알 언서(Al Unser:1939- ) 두형제는 알버커키 출신의 유명한 자동차 경주 왕들이다. 바비는 인디아나폴리스500 자동차 경주에서 네번, 알은 세번이나 일등의 영광을따냈다.
o 류월레스(Lew Wallace: 1827-1905)는 남북전쟁때는 장군이였는데 뉴멕시코가 주로 승격되기전에뉴멕시코지역을 다스리는 지사(Governor)로 부임해서 이지역을 위해 공을 세웠다. 그는 작가의 소질이있어 고대 로마시대의 기독교인의 얘기를 바탕으로 하는 벤허(Ben Hur)라는 소설을 썻다. 나중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져 벤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작품이 되었다.
o 밴 아브루조(Ben Abruzzo: 1930-1985)는 공군에서 제대한뒤에 기구 파이로트를 취미로 하여 두번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1978년 Double Eagle II라고 이름한 기구를 타고 최초의 대성양횡단에 성공했고 1981년 Double Eagle V 로는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다. 알버커키가 발룬의 중심지가 되게한 공로가 크다. 그의 아들 리차드 아브루조도 발루니스트였는데 2010년 9월 유럽에서 있었던 발룬 행사에 참여 비행중 이태리근처의 바다에서 조난당해서 사망했다. 아브루조 가족은 샌디아 트렘(Sandia Tram)과샌디아 스키장의 주인이기도 하다.
o 피트 도메니치(Pete Domenici:1932- )는 뉴멕시코의 공화당 상원위원으로 최장기간을 연임한 정치가이다. 1973년 당선된후 2009년 은퇴하기까지 상원의 에너지 및 예산 상임 위원회 일원으로 일했다. 부모는 이테리출신으로 불법 이민자로 와서 알버커키에서 식품가게를 운영했었다. 가게일을 도우면서공부했던 그는 UNM에 진학했다. 그뒤 덴버법대에 진학, 졸업한뒤 다시 돌아와 정계에서 일하다가 상원위원에 당선되었다.
현제 뉴멕시코에 거주하고 있는사람으로 우리가 잘아는 몇분을 보면… 타오스 지역에는 국방장관을 지낸 도날드럼스필드(Donald Rumsfeld)와 영화배우 줄리아 러버츠(Julia Roberts)이 있고 산타페에는 영화배우 셜리메크레인(Shirley MacLaine)이 있다. 북쪽 콜로라도 경계지역에는 CNN과 TNT케이블TV 방송사 사장인 테드 터너(Ted Turner)가 59만 에이커의 농장(Ranch)을 소유하고 있다. ABC TV 기자였던 샘 도날드슨(Sam Donaldson)도 링컨 카운티에 농장을 가지고 있다.
서기 800년에서 1300년 사이에는 아나사지(Anasazi)인디안이 뉴멕시코주 서북부에 있는 챠코케년지역을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해서 챠코문명(Chaco Culture)을 이루며 살았다. 챠코케년지역에는 5층 건물을 위시해서 대형 건축물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1276년부터 1299년사이에 있었던 심한 가뭄으로 그들은 삶의 터전이였던 도시를 버리고 리오그란데 강가로 내려와서 소 집단을 이루는 푸에블로(Pueblo)를 형성해서 농사를 위주로 하면서 흩어져 살게 되었다.
챠코 케니언의 건물 유적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후 스페인은 지금의 멕시코 시티(Mexico City)지역을 정복하여 나라를 만들어 이름을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ña), 영어로 번역하면 New Spain이라는 나라를 만들고 총독을 보내어 다스리게했다. 총독은 지금의 뉴멕시코주에 시볼라(Cibola)라는 도시가 있는데 길바닥을 금으로 장식할 정도로 부유한 일곱 도시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총독은 1539년 마르코스(Marcos)신부를 단장으로하여 원정길을 가게했다. 쥬니(Zuni)인디안 마을에 왔을때 일행중 하나가 인디안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하자 일행은 도주해서 멕시코씨티로 가서보고하길 시볼라라는 도시는 멕시코씨티보다 몇배나 큰 도시였다고 과장해서 허위 보고를 했다. 총독은 이듬해 코로나도(Coronado) 장군에게 부대를 이끌고 뉴멕시코에 있는 쥬니 인디안이 사는곳에 가서 이 사실을 알아보라고했다. 코로나도 일행은 쥬니 인디안 마을에 와서 보고는 시볼라라는 금의 도시는 근거 없는 헛소문이였음을 알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어도비집에 운모로 된 창을 썻는데 저녘 햇빛에 반사되는 빛이 금색으로 보여 금으로 장식된 도시로 소문이 난것으로 믿어진다고 한다. 약 40년이 지난뒤1598년에는 스페인 왕 필립2세의명에의해서 오냐테(Oñate) 가 이끄는 본격적인 북방 개척원정이 시작되었다. 리오그란데 상류 지역에 스페인 이주민이 정착하고 인디안들에게 기독교를 선교하는 활동을 했다. 그러나 새로운 종교를 거부하는 세력도 컷다. 아코마(Acoma)인디안들과의 갈등으로 10여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죽게되자 보복으로 800여명의 인디안을 죽이고 살아남은 인디안도 25세이상의 남자들은 전부 그들의 발목하나를 잘라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1610년 스페인 사람들은 상그라데그리스도 산밑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수도로 정하고 이름을 산타페(Santa Fe)로 지었다. 미국에서제일 오래된 수도(Capital City)가 이때 된것이다.
뉴스페인 당시의 지도
스페인사람들은 인디안땅을 식민지로 삼고 인디안의 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썻다. 인디안은 그 반발로 1680년8월 10일 일제히 봉기하여 성당을 불사르고 사제를 죽이는 반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400여명의 스페인사람은목숨을 잃었고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 지금의 멕시코 지역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몇년뒤 인디안의 지도자가 죽고나자 스페인사람들은 다시 이땅을 손쉽게 무혈로 되찾고 만다. 1692년 부터 이 땅은 스페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과거의 실패를 되푸리 않으려고 식민 정책은 보다 더 온건한 정책으로 바뀌어졌고 기독교도 인디안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200여년이 지난뒤 1821년, 스페인의 통치아래있던 뉴스페인은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하여멕시코라는 이름으로 독립국가를 선언하게 된다. 따라서 뉴멕시코는 멕시코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불과25년밖에 않된다. 1846년 멕시코와 미국간의 영토 분쟁이 일어났다. 미국의 스테펜 커니(Stephen Kearny)장군은멕시코군의 저항도 받지 않고 지금의 뉴멕시코의 라스베가스(Las Vegas)까지 들어와서는 광장옆에 있는 어도비집지붕위에 올라가서 “이제부터는 뉴멕시코는 미국땅이다”라는 선언을 했다. 이후 2년뒤 정식 조약문서에 의거 이곳 뉴멕시코는 미국의 영토가 되어 인디안, 히스페닉에 이어 앵그로인이 뉴멕시코의 거주민이 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영토가 된이후 이곳 인디안은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나바호 인디안과 미국인 서부 개척자 사이에 마찰이 생기자 겔럽(Gallup)지역에 살고 있던 나바호 인디안을 300마일 떨어진 페코스강이 있는 포트섬너(Fort Sumner)로 강제 이주시킨일이 있었다. 이 계획을 반대한 나바호 인디안은 완강히 맞서 싸우다가 케니언디쉐이(Canyon de Chelly:아리조나주에 있음)에 도주하여 숨어버리자 키트 칼슨(Kit Carlson)대령이 지휘하든 군인들은 곡식과 민가를불태우고 가축을 잡아죽이는 보복을 가해서 나바호인디안의 항복을 받아내고 강제 이주를 하는 장거리행진, 롱워크(Long Walk)를 하게 하였다. 300마일되는 먼길을 겨울철에 8-9000명의 인디안은 걸어서 이동 하는 가운데 200여명이 기아와 추위로 인해 죽었다. 새로 마련한 인디안 보호구역에서 농사를 짓고 새로운 개척을 하려했으나 토지와 기후 조건이 맞지않아서 계속 기아와 질병으로 많은 인디안이 죽어갔다. 결국 4년뒤1868년 미국정부에서는이 계획이 잘못된것임을 인정하고 나바호 인디안을 본래 고향, 뉴멕시코 서북부로 돌아가게 허용했다.
뉴멕시코는 신개척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었다. 카우보이를 위시해서 광부, 철도공사 노동자, 노름꾼과 각종 상인들이 늘어나면서 범죄도 늘어나 무법천지가 되는듯 했다. 미국의 어느 장군은 죠크로 말하길, ‘미국은 멕시코와 다시 전쟁을 해서 골치꺼리의 뉴멕시코를 도로 가져가게 해야된다’고 말했다고한다. 빌리더키드(Billy the Kid)는 이 당시 무법의 서부사회를 대표하는 인물로 전해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차츰 질서를 회복하면서1912년 드디어 뉴멕시코는 미국의 47번쩨의 주로 승격 된다. 미국영토가된지 62년만이다. 뉴멕시코의 좋은 날씨가 페병치료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요양원시설이 알버커키에 늘어났고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뉴멕시코의 자연풍경에 매력을 느끼고 많은 화가, 사진작가, 저술가등이 산타페와 타오스에 몰려왔다. 넒은 평지가 많은 이곳은 공군기지를 만드는데 좋은 조건이여서 이차대전시기에 세개의 공군기지가 들어섰다. 화이트샌드 미사일 시험장도 생겼다. 험한 계곡이 있는 산속에 비밀유지하기 좋은 조건을 가춘 로스알라모스(Los Alamos)에는 원자탄 개발을 위한 연구소가 생겼고 1945년 7월16일 뉴멕시코 남부 사막에서 최초의 원자탄을 터뜨리는 실험을하여 핵시대의 문을 연것도 뉴멕시코에서 일어난일이다.
이차대전때에 참전 용사들중에 나바호 인디안은 암호병(Code Talker)으로 활약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미국군은 일본 사람이 나바호 말을 알지못하는점을 이용해서 나바호말로 암호에 대신해 써서 미국군의 기밀유지를 할 수 있었고 일본군은 끝내 암호를 해독 못한 것이다. 한국전쟁때는 뉴멕시코주도 큰 기여를 했다. 갤럽(Gallup)에 사는 일본인 2세인 히로시 미야무라(Hiroshi Miyamura)씨는 한국전쟁때 동료군인을 위해 기관총 사수로 중공군과 맞서 용감하게 싸운 공로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 부터 명예훈장을 받았다. 한국동란때 뉴멕시코주 인구는 지금 인구의1/3정도밖에 않되었지만 한국전에 파병한 뉴멕시코주 출신 군인은 2만명이나 된다. 그중에 189명은 전쟁터에서목숨을 잃었다.
Navajo Code Talker 기념동상
뉴멕시코주는 인디안, 스페인 그리고 앵그로 문화가 혼합된 타주가 갖지 않은 다양한 색갈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 지금도 미국의 발전에 기여하는데 큰 몫을 담당하는 주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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